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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칼럼> 뻐꾸기 둥지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12. 27. 14:32
<칼럼> 뻐꾸기 둥지
심천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06/12/25 18:39)

우리가 흔히 ‘뻐꾸기 둥지’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본 듯도 하지만, 기실 ‘뻐꾸기 둥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뻐꾸기는 결코 자기 둥지를 짖지 않는다는 말이다. 뱁새가 알을 낳아 품기 시작하면, 뻐꾸기는 어미 뱁새 몰래 뱁새 둥지에다 알을 하나 낳아 둔다. 뻐꾸기 알은 뱁새 알보다 크지만 색갈이 같아 어미는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열심히 품어 준다.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주변에 있는 뱁새 알이나 새끼들을 뒷발질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트린다. 아직 눈도 못 뜬 갓 부화된 뻐꾸기 새끼가 본능적으로 그리한다. 물론 둥지 밖으로 떨어진 뱁새 알이나 새끼는 천적들의 밥이 되고 만다.

어미 뱁새는 혼자 남은 뻐꾸기 새끼를 자기 새끼인줄 알고 열심히 키운다. 어미보다 몸집이 훨씬 커졌는데도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독립시켜 날려 보낸다. 어느 틈인지 부지불식간에 뱁새 둥지는 뻐꾸기 둥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고 . . . . . .’ 뻐꾸기! 어릴 적 듣던 이 새에 대한 추억은 지극히 낭만적이었다. 시정(詩情)이 넘쳐 흐르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이 같은 시정과 낭만 뒤에는 무서운 음모와 독기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간첩을 민주투사로 둔갑시키는 우리나라에서 386세대가 중심이 된 일심회라는 간첩조직이 적발되었다. 국민의 정부 이후 거의 간첩들을 잡지 않다가(?) 어쩌다 생색만 낸 것을 뭐 그리 대단하게 여기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들이 아니다. 남한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떳떳이 사회인으로 생활하면서 자생한 간첩이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북한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남한을 ‘적’이라고 믿고 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면접결과는 더욱 놀라울 뿐이다. ‘남북화해 시대에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없으니 군대는 필요 없다’,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 일본’이라고 대답한 자들도 있었다. 6.25가 통일전쟁이라고 한 ‘강 모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은 잘못’이라고도 했다. 수석합격자도 민노당원이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다.

전교조 교사가 중학생들을 데리고 빨지산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리라고 했단다. 50년 전의 빨지산 출신자들이 모여 ‘올해는 반드시 미군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전의를 불태웠다. 그 학교의 한 학생은 인터넷 카페에 ‘미국넘들아 – 평화롭게 살려는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 한반도에서 미국이 일으키려는 전쟁을 온몸으로 막아 내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런 행사가 당국의 방조 아래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어린 아이들을 빨지산 전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서관, 보좌관들을 비롯한 당직자들 중에 민노당 당적을 가진 자들이 30 여명에 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술한 일심회 간첩조직에 민노당 사무부총장을 비롯해 서울시 대의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민노당 당원들이 한나라당 정책을 열심히 생산해 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신문법을 통과시켰고, 전교조에 넘겨줄 사학법도 손을 들어 주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진짜 내 새끼를 기르고 있는 것인지?

민주주의는 관용을 가르친다. 소수의견도 존중토록 한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반면 전체주의는, 그것이 정치 이념이던 종교던, 공존을 거부한다. 자신의 주장과 사상만이 옳다고 가르친다. 이같이 한쪽은 관용을, 다른 쪽은 고집을 가르치는 것이 공존하면 누가 이길지는 자명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장점들이 전체주의와 만났을 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용, 평화공존, 상호존중을 내 세우지만 북쪽은 자기 것만 고집하고 있다. 물질적 퍼주기도 문제지만 정신적 퍼주기가 더 큰 문제다. 공존은 피차 관용할 때 이루어진다. 한쪽만의 관용은 결국 굴복으로 끝나고 만다. 햇볕정책인지 포용정책인지 퍼주기 정책의 허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둥지를 지키려면 관용과 공존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상이나 주장까지 용납하는 것이 관용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알을 밀어내 떨어뜨리는 뻐꾸기 새끼를 기를 수는 없다.

2007년 대선에서 또다시 좌파적 색채의 정부가 들어선다면 우리나라는 결국 뻐꾸기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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