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이 註) 유신정권에 격렬하게 항거하던 세력들에게도 육 영수 여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단순한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서 최고로 존경 받던 분이셨다. 그분은 우리 4,500 만 국민 개개인의 어머니 즉 “나의 어머니”셨다. 8.15가 되면,
비명에 가신 그분이 생각난다. 여기 미국 동포 신문에 난, 그분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 저 한다.
사랑하는 육 영수 여사님!
광복절을 맞이하여 님의 영전에 서니, 32년 전 뜻밖의 서거에
망연자실했던 비통함이 되살아 납니다. 한 송이 목련처럼 피었다 목련처럼 지신 여사님. 해마다 8월이 오면 님을 향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는
저입니다. 떠나신 자리 황량한 벌판같이 쓸쓸하고, 쌓으신 유덕 하늘만큼이나 높은 탓이겠지요.
자애로우셨던 육 영수 여사님!
수 년 만에 방문한 조국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 몸부림치는 아우성은 보릿고개를 넘던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때는 정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빵과 자유, 그 중에서 배고픈 자의 간절한 보배는 첫째가 빵이요, 둘째도
빵이었습니다. 자유는 뒷전이었지요. 주린 배를 채우고 난 다음에야 자유도 갈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민자들이 조국을 떠났던
사연에 대한 답이 대부분 빵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해 주는 듯 합니다.
국민의 어머니셨던 육 영수 여사님! 64년 12월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할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이 채 $100도 못 미치는 거지 나라나 다름 없었다면서요. – 중 약 -. 북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언제 공산당에게 먹힐지 모른다는 그 말이 무서워 얼마나 떨었던지요.
그래서 경제부흥만이 살 길이라
믿었던 박 정희 대통령께서는 서독으로 돈을 빌리러 갔던 것입니다. 그날 조국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수 백 명의 간호사와 광부들이 모여
들었고, 읽어 내려간 환영사의 첫 줄은 지금도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언제 잘 살아 봅니까?”
그 한 마디에 왈칵 복 바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모두들 여사님을 부둥켜 안고 “어머니!” 하며 통곡하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가난뱅이의 설움이 얼마나 쓰라렸으면 그러했겠습니까?
그날 여사님께서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합시다!” 하며 다독이시던 통한의 격려는, 굶주림에서 탈출하는 동기를 마련했지요. 말도, 음식도, 문화도 다른 낯선 땅에서 애국이란 사명
하나로 똘똘 뭉쳐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그들 . . . 덕분에 후손들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여 풍요의 삶도 맛 보는 것 아닙니까?
희망의 등불이셨던 육 영수 여사님! 6.25 전쟁의
폐허로 생존의 더듬이를 상실해 버린 국민들이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새벽잠을 깨우며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던 새마을 노래, 목이 터져라
신명나게 불렀던 그 노래가 귓전을 때립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배달민족의 저력은
대단했습니다. 허허벌판에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고, 빈손으로 소양강 땜과 포항제철공장, 울산에 현대조선, 원자력발전소를 세워 민족의 창달을 이루어
냈던 잠재력.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로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공룡으로 우뚝 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IMF 사태를 맞게 된 대한민국은 점점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로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북한은 온 세계를 놀라게 하며 미사일을
쏘아대더니, 어처구니 없게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마저 중단해 버렸습니다.
나의 어머니, 육 영수 여사님! 삼가 간청을
드립니다. 6, 70 년대 그러셨던 것처럼, 한국인의 역량을 다시 한번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지도자들에게 리더로서의
참신한 능력을 주시옵소서.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국제사회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용기와 자신감을 주소서. 찬연한 별이 되어 삼천리 금수강산을
빛내 주시옵소서. . . .
살아 생전 늘 잔잔한 미소로 제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 주셨던 여사님. 그런 따뜻한 모성애를 간직했던
여사님이야말로 우리의 참다운 어머니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사님을 잊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신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국립묘지에는 오늘도 여사님의 숭고한 뜻을 새기려 많은 분들이 줄을 잇고 있답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합니다.
-오 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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