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스트N [서울포스트] <칼럼> 사극 드라마 유감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11. 13. 18:21 <칼럼> 사극 드라마 유감 심천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06/11/07 19:49) 어린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콤퓨터와 제일 먼저 친숙해 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엄마 아빠 등 가족 다음으로 친해지는 것 같다. TV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TV나 콤퓨터와 친해지는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적당한 시간 안에 유익한 프로그램만 즐길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꾸미고 편성하는 프로그램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많다. 사극만 해도 그렇다. 물론, 사극은 어디까지나 사극일 뿐, 그 자체가 역사는 아니다. 그러나, 자라는 아이들은 책을 통해서 역사를 익히기 보다는,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 내용을 익힐 수도 있다. 설령 절대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쩌다 한번 본 사극이 진실된 역사인양 인식되어 남아 있기 쉽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드라마나 소설을 아무리 재미있게 꾸미더라도, 또는 작가의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꾸미더라도, 역사의 큰 줄거리만은 그대로 지켜야 될 것이다. 삼국지가 재미있는 것 중의 한가지 원인은,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했기 때문에, 사실로 믿을 수 있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드라마 ‘주몽’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시청률이 40%를 넘는다. 그런데, 해모수는 왜 금아왕의 친구로 나오며, 이야기 전개와는 달리 항상 전투에서 패하기만 하다가 끝내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가?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역사에서 해모수는 해부루 왕의 손자다. 그 후 동부여 국을 세워 시조가 된다. 그런데도, 비참한 최후를 맞는 한낱 장수로 묘사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또, 금아 왕의 아들은 모두 일곱 형제들인데, 드라마에서는 왜 두 형제만 나오는지? 그리고, 주몽이 부여를 탈출할 때, 이복 형제들에게 쫓기느라 가족을 동반할 겨를도 없이 황망하게 탈출했다. 그리하여, 단검을 부러뜨려 한쪽은 자신이 갖고 다른 한쪽은 어린 유리 왕자에게 주고 떠났다.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서다. 그 후 장성한 유리 왕자가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을 찾아가서 부러진 칼을 맞추어 확인하고 왕세자가 되며, 주몽의 뒤를 이어 고구려 제 2대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이 더 극적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닐까? 소서노와의 사랑 이야기도 그렇다. 소서노는 고구려 건국과정에서 맺은 일종의 정략 결혼이며, 또 유리왕자가 왕세자가 된 후, 비류와 온조를 대리고 주몽을 떠나 남하하여 백제국을 세우게 된다. 주몽과의 깊은 사랑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부인 예소야와 더욱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개 되어야, 시청자들이 더욱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지 않았을까? 요즈음 드라마 ‘황진이’도 한창 뜨고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다고 누가 하도 권해서 비디오 두 편을 빌려 왔었다. 그러나, 첫 편 전반부만 보고, 나머지는 보지도 않고 반납해 버렸다. 재미가 없어서다. 그 유명한 황진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그 옛날, 사대부에 관한 기록만을 남길 뿐이지, 천한 백성들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천민들에 관한 기록들은 관련된 사대부의 기록에 묻혀서 알게 되거나, 소설 또는 구전으로 알게 된 것들 뿐이다. 황진이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황진이에 관한 드라마를 어떤 형태로 꾸미던 그것은 작가 마음대로다. 그러나, 필자가 전해들은 황진이에 대한 구전은 다음과 같다. 양반 집 규수였던 황진이를 담 너머로 한번 본 이웃집 총각이 그녀의 천사 같은 미모에 반해버렸다. 신분차이로 인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던 그 총각은 그만 상사병에 걸려 앓아 눕게 되었고, 몇 달째 식음을 전패하고 앓다가 끝내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상여가 나가는 날, 황진이 집 앞에서 상여꾼의 발이 땅에 붙어 꼼짝 못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진이가 입던 치마를 상여에 걸어주자 그제야 상여가 떠날 수 있었다 한다. 이와 같이 황진이를 한번 본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상사병에 걸리거나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하게 되어 그 수 많은 총각들을 울려 놓고 시집을 갈 수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결심하고 기생이 되어 뭇 남성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는 것이 속설이다. 서화담을 비롯하여 온 나라 안의 난다 긴다 하는 활량들과 석학들과 고명하신 분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빼어난 미모 뿐만 아니라 해박한 학문적 지식의 넓이와 깊이 때문이었다. 장안의 석학들과 견줄만한 넓고 깊은 학문은 결코 기방 수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명석한 두뇌도 두뇌지만, 무엇보다도 양반 집 규수로서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반 집 규수였었다고 묘사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또 더욱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황진이의 진가는, 극도로 절제된 예의와 규범 가운데, 내노라는 한량 석학들과 그리고 명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외모 못지않은 깊은 내적 아름다움에 있을 것이다. 사극은 모름지기 첫째는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하고 둘째 감동과 뿌듯한 보람과 자부심이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 천 ● 심천 자유기고가의 서울포스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