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스트N

[서울포스트] (연재) 백지로 보낸 편지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11. 26. 22:10
(연재) 백지로 보낸 편지
아침을 여는 참 좋은 느낌 中
최복현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6/11/26 00:17)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 밑에 마다 노란 은행잎들이
마치 금으로 만든 멍석처럼 곱게 깔려 있습니다.
불빛을 받으며 고운 색깔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그림같습니다.

이런 밤이면 문득 지난 날들의 그림들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지난 날, 마냥 순수했던 아스라한 열정의 날들,
괜히 그리워 하고, 괜히 외로워 하며
세상의 근심이란 근심은 모두 짊어진 것처럼
고독한 소크라테스인양 심각한 표정으로 낭만을 씹던 그날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이 엇갈리는 계절이면
알 수 없는 고독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던 날들,
빨간 우체통 앞을 지나노라면 왠지 모를 설렘이 일던 날들이 그리움되어 다가옵니다.

편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마음 속에 고이 그려넣던 날들,
투박한 줄을 따라 정성을 기울이며 빈 공간을 채워 가던
사각거리는 펜 밑으로 글씨들이 줄줄이 태어난던 날들이 그립습니다.

<<언제라도 생각이 생각이 나거든
그많은 그리움을 편지로 쓰세요
사연이 너무많아 쓸수가 없으면
백지라도 고이접어 보내주세요

지워도
지워도
지울수 없는
백지로 보내신 당신의 마음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을거에요>>

어느 여 가수가 고운 목소리로 부르던 그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던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은핸나무 아래 발길이 멎었습니다.

모든 것은 세월을 따라 애련한 그리움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그런 밤이면 문득 빨간 우체통, 투박하면서도 정감있는 까만 잉크병,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소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때로는 지독한 그리움은 병이 될 테지만
살폿한 그리움은 아름다움이 되어 다가온다는 걸 느낍니다.
몸은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순수의 시대,
무언가를 앓으면서도 꿈을 꿀 줄 알고,
종이와 펜을 대하며 진지한, 생각하는 로댕이 되어도 마냥 좋았던 날들,

별을 바라보며 마냥 부푼 마음으로 밤을 지샜던 날들,
무엇을 보든 그대로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던 순수와 열정의 날들,
그렇게 모든 것을 눈으로 보기보다는 마음으로 보았던 날들이
줄줄이 추억되어 그리움의 뿌리들을 부르며 고운 노래를 만들어 줍니다.

보낼 곳은 없더라도 이런 새벽이면 편지라도 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어색한 손 놀림,
누군가에게,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이라 어색하지만
매일 말로만 나누돈 대화를 편지로 고이 적어 보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때로는 순수한 날들로 돌아가는 것, 그 것은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 칼럼니스트 문필가 최 복 현


최복현 칼럼니스트의 서울포스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