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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사막의 나라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2. 14. 00:40
사막의 나라
문제는 비자였다. 왜? 나는 니제르의 비자를 가지고 있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들이..

박근하 기자 (기사입력: 2006/02/13 17:46)  

사막 여행의 시작은 생각만큼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막을 건너기 전에 나는 너무 많은 긴장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 사막의 옛 푸른 귀족 투아레그. 도시사람들은 지금 사하라에서 이들이 가장 가난하다고 말했다.

베넹에서 만난 EU(유럽연합)사람들은 내가 테네레 사막을 건너 리비아와 차드의 국경지대인 두루쿠로 가면 먹을 것조차 얻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가난한 투아레그족 사람들을 조심해야한다고 했다. 차드와의 국경에서는 아직도 제노사이드(인종청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나에게 사막도시를 위해 일하고 있는 EU사람들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고 그들의 지시에 따르기를 당부하였다.

베넹의 비버리힐즈라는 불리는 EU사람들이 사는 마을.. 조그마한 실내 수영장이 딸린 조그마한 저택에 집집마다 문지기, 요리사, 가정부가 따로 있다. 마을에는 고급 상가들이 즐비하다. 지역스텝인 그들의 연봉은 약 14,000~18,000EURO (우리돈 약 1600~2000만원). 아프리카에서는 상당한 상류층에 속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끔찍한 기후와 생활 환경을 고려할 때 이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이들이 유럽에서 누릴수 있는 생활환경에 비해 잘 살고 있는 건 아닐테니까.

한국인으로서 사하라를 건넜던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담에 대해 낮엔 더위가 무섭기만하고 밤엔 추위가 무서워 다시 낮을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이라고 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후추에 염소고기, 땅콩, 대추야자 밖에 없고 사막을 건너는 것이 너무나 고되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었다.

사람들은 모두 내 여행 계획에 반대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하라는 여자 홀로, 그것도 빈약한 여행경비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같은 위험한 곳이었다. 세계 모든 대륙을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여행했다는 어느 여자 여행객으로부터 충고에 가까운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현지 흑인들조차 두통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사막의 태양. 얘들은 일사병에 익숙하다며 웃는다.

그러나 나는 결국 테네레 사막을 건너게 되었다. 아니 건넜다는 표현은 조금 거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막의 끝까지 갔다가 결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되돌아왔으니까..

그들과 다른 사막을 건넜기 때문인지 아니면 몇번의 여행에서 이미 사막에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단지 몇년의 시간 차이로 전쟁이 종식되고 마을들의 식량사정과 교통수단이 조금 더 나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건기와 우기 사이의 기후였고 여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보호를 받으며 사막을 달렸으니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건기의 사막여행은 예상한만큼만 끔찍했던 것 같다. 달리는 트럭위에서 살속을 파고드는 차거운 밤바람은 충분히 견딜만하였다. 4m나되는 머리의 터번과 두꺼운 담요가 작열하는 태양빛과 함께 밤의 추위를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담배운송차량은 4일을 달려 사막의 도시 두루쿠에 도착했다. 트럭이 멈추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와서 이것저것 조사하더니 나만 내리라는 사인을 보낸다. 분명 더 가야한다고 들었는데... 같이 트럭을 탔던 사람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내 가방을 트럭 아래로 던지고 짐을 챙기라 재촉하는데 갑자기 이들이 무정하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뇌물을 주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문제는 비자였다. 왜? 나는 니제르의 비자를 가지고 있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들이 피식 웃는다. 누군가 별일 아니니 긴장할 필요없다고 영어로 설명한다. 경찰들을 따라가 여권에 새로운 도장을 찍었다.

● 대통령이 살고 있는 마을 두루쿠의 전경. 대통령집만 우리나라 시골에 있는 벽돌집과 비숫하다.

사하라 사막에서 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가 여권에 비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리비아나 차드로 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비아 국경에서 타대륙인들의 비자가 불가능하고, 두루쿠와 차드 국경지대는 아직도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어 그쪽으로 가는 어떠한 운송편도 없다고 했다..

11개 마을의 대통령.. 가장큰 마을 두루쿠의 인구수 9천명..

제대로 갖춰지지않는 나라에서는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정말 어리석은 기우였다. 군인들은 정말로 나에게 친절했다. 그들은 사하라 사막을 구경오는 서양인들을 본 적이 많다고 했다. 아시아인은 아주 가끔.. 여자가 혼자 찾아온 것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비자 도장을 받은 후 나는 대통령의 집으로 안내 되었다. 넓고 복잡하기만 한 찌질한 서양식의 집.. 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물탱크가 돌아가고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자집임을 깨달았다. 집 마당에서는 공작이 어슬렁 거렸다. 사막 기후의 특성상 공작의 얼굴에는 파리떼가 잔뜩 붙어있다.

사막의 태양은 땅속 탱크의 물도 몽땅 데워 놓았다. 그렇게나 더운 날씨에 냄새가 나는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대통령은 나에게 점심으로 빵과 우유.. 참치 통조림을 직접 대접해 준다.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나를 딸 친구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배불리 먹고나니 하인들은 그늘진 곳에 내 침상을 마련해 주고 낮잠을 자라고 한다. 누군가 부채질을 시작한다.

잠이 올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모른다. 6개국어 회화사전을 꺼내어 더듬더듬 불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내가 그의 집에 머물기를 권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오아시스 마을로 가기를 희망했다.

근데 불어로 오아시스를 뭐라 하는겨? ...대화는 5분만에 끝나버렸다. ㅡ.ㅡ;;

내 침대 옆에서 근엄한 아저씨들 몇명이 모여 뭔가 진지한 얘기들을 한다. 정치 얘기인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단정하게 차려 입은 흑인 소년이 들어 왔다. 또박또박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다. 이 집 하인으로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지금은 방학이라 마을로 돌아 왔다고 했다. 대통령이 영어 통역을 위해 자기를 불렀다고 했다. 나에 대해 대략 묻고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정치가 아저씨들.. 이번엔 내 얘기들을 한다. 대학생이니 아직 결혼을 안했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하더니 학교 방학때 부모님 돈으로 세계여행을 다니며 각국에서 아무 남자와 지내는 돈많은 집 아가씨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들의 대화가 원주민 언어였는지 불어였는지 아랍어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한마디도 안통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말들이 정확하게 이해되는 건지 몇번의 여행에서 쌓인 언어감각의 경험이 정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ㅡ.ㅡ;;

암튼..이놈의 말에 의하면 11개의 마을중 2개의 마을이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우물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오아시스는 빌마에 있다고 했다.

● 인구 9천명을 부양하고 있는 두루쿠의 우물...이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뭔가 오해한듯.. 그게 가능해?

빌마.. 베넹에서 EU사람들이 말해 주었던 그 곳.. 극도록 먹을 것이 부족하여 현지인들은 집안에 먹을 것을 숨겨 두고 있지만 아무도 내게 대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나는 운이 좋았다. 대통령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빌마에 살고 있었고 대통령은 나를 사촌동생이라는 택시운전기사(?)에게 맡기며 그의 집에서 머물라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소형 봉고차의 지붕에 올랐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위험하니 뒷칸 트렁크에 앉으라고 충고하였지만 나는 달리는 차 위에서 사막을 맘껏 구경하고 싶었다. 늘 그랬듯 태양은 지독했지만 그래도 태양빛이 한풀 꺽인 늦은 오후가 아니었던가.

나는 소형 봉고 지붕에 달린 간이 난간을 힘껏 쥐고 세 시간을 달려 오아시스의 마을 빌마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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