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스트C [서울포스트] 설교듣는 군중들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2. 25. 14:56 설교듣는 군중들 '그를 보고 완전히 이해한 나도 미친 넘 아닌가' 양기용 기자 (기사입력: 2006/02/25 02:41) 늦은 시각의 전철안 풍경은 느림이요 지침이다. 졸거나 침묵하거나 허멀겋게 퍼질러 앉아 있는 삶의 피곤함 자체이다. 이따금 겁없는 연인들이 킥킥대며 쎌카질을 해대는 것 말고는...(텔레폰으로 나라 거덜나고 있는데) "ㅈ만한 땅덩어리에서..." 격한 소리가 내 귀를 잡아 끈다. "ㄱ새끼들은 사대주의자요...넓은 미국가서 지랄하라고...애비도 없는 빨갱이 새끼들 말하는 것 봐...좋은 사람도 많은데...신 을사 오적이란 말이여...ㅈ만한 땅덩어리에서...나라 거덜난거여...협의적으로 말고...광의적으로 생각하란 말이여..." '상당히 배운 미친 넘' - 협의,광의가 압권이었다. 내 나이 정도로 보이는데 머리는 벌써 하얗게 되어 있었고 수염까지 새치가 수두록했다. 꽤죄죄하기는 거지나 마찬가지. 욕을 쏴대지만 그렇다고 반사회적 행동이 보이지 않은 그는 세상을 변화무쌍 누비는 소시민이거나 도인이거나 기인이거나...뭔가 분명한 신분(?)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돌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웃음이 나와 미칠 지경이었다. 하긴 며칠전 명동에서 남루한 차림의 한 여자가 '신중하게'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슨 새끼라고 하기에 자세히 들어보니 일본말이었다. '와다시와...시모노세끼..강고꾸에..시노모새끼...' 시모논지 시노몬지..좌우간 일본 지도에 그렇게 발음되는 항구가 있다. 얼핏 듣기엔 나에게 전투적일 수 있었으나 그 '무슨새끼'에서 한국까지 놀러 와 돈을 잃어 버렸다,로 해석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늘 나의 동년배의 행동을 보고 필시 그 일본인도 한국에 와서 돌아버리지 않았나는 걱정이 들었다. 전철안 내 주위의 근 50여명은 아무도 웃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냥 그렇게 졸거나 침묵했다. 이해 했다는 얘긴지 이해 못한다는 얘긴지, 듣는 건지 안듣는 건지 모르지만 꼭 예배당 목사 설교 때 사람들의 표정과 흡사했다. '나만 웃었다?...ㅠㅠ' 나는 전철을 내리면서 제법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를 보고 완전히 이해한 나도 미친 넘 아닌가' 나도 어딜가다가 'ㅈ만한 것들이...'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말이 입 밖으로 튀나온 적이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 보았을까 안 보았을까...궁금해 미치겠네~~ ● 양기용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