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스트C [서울포스트] <칼럼>‘인생 NG’ 파티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8. 9. 16:54 <칼럼>‘인생 NG’ 파티 행복과 기쁨, 유머와 폭소, 포근함과 정은 삶의 활력소 나요셉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6/08/07 10:44) 드라마 촬영 중 NG는 방송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데 그것만을 모으면 재미있는 영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NG는 긴 줄거리를 만들지 못하지만 그것 하나하나가 짧은 메시지인 유머를 담는다. 어떤 의미에서 드라마 촬영 장소에 NG가 없다면 지루할지도 모른다. 생방송처럼, 아니면 로봇처럼 모든 것이 정확하고, 틈이 없고, 완벽하다면 인간미도 없을 것이다. 가끔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를 평하기를 “내 사전엔 NG가 없다”라는 명언(?) 한방으로 끝내버린다. 좋은 평가일 수 있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하면 좋은 것만도 아니다. 물론 NG는 두 종류가 있다고 본다. 서두에서 전제한 일반적인 NG인 ‘유머를 주는 것’과 일어나지 말아야 할 NG인 ‘사고’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전제하는 NG는 단순한 실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프로는 실수하면 안되는가? 프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가? 그런데 프로들의 NG는 더 재미를 준다. 완벽하다 싶을 때 터지는 NG는 더 큰 폭소를 자아낸다. ‘NG 파티’는 즐거워 카리스마 넘치는 최민수의 강한 눈빛 연기 도중 파리에 놀라 NG가 났다면 대박웃음이다. 그리고 고연정의 눈물 연기 중 전날 보았던 웃찾사 ‘그건 아니잖아’가 생각나서 현영처럼 웃는다면 어떨까? 원빈이 젠틀맨 연기를 하다가 핸드폰 소리에 놀라 송대관처럼 “아따, 뭐셔.”라고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건 어떨까? 최수종이 임금 역할을 하다가 대사를 까먹어 “죄송합니다”라고 내시처럼 말했다면 어떨까? 전원일기에서 엄마 김혜자가 착각해 일용엄니 김수미의 톤으로 말했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 재미있는 NG파티가 될 것이다. 인생을 돌아보자. 우리들의 ‘인생 NG’는 어떤 의미를 담는 것일까? ‘인생 NG’는 심각하게 생각하면 비판이나 자기 비하로 빠질 수 있다. 그러니 ‘인생 NG’도 유머를 생각하며 좋을 것이다. 나의 ‘인생 NG’를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왼손에 시계를 차고 이곳저곳 시계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새벽에 급히 나가느라 양복 상하의를 다른 것으로 입은 적이 있다. 검은 바지에 곤색 상의를 입고 있었다. 날이 밝아서야 알았다. 그리고 자동발권기에서 등본을 떼고 자동주민등록증을 그대로 꽂아 놓기도 했고, 빨간색 플러스팬을 뚜껑 없이 가슴 주머니에 꽂아 와이셔츠를 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인생 NG’ 상태를 지가 비하로 삼으면 자기만 손해다. 유머로 넘기도 웃어 버리면 몸과 정신이 좋아진다.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인생 NG’ 사건을 모아보자. 어느 유명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청중 속에서 핸드폰 벨이 울리자 잠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데 잠시 후 자신의 핸드폰에 울렸다. 그랬더니 핸드폰을 꺼내 “지금 설교 중입니다.”라고 하고 끊었다. 모두가 함께 웃었다. 언젠가 교수 친구와 식사 중이었는데 옆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친구 교수에게 “설경구씨 시죠. 반갑습니다.”라고 했다. 그 친구와 나는 한바탕 웃었다. 그 친구는 아니라는 대답대신에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이 내 친구인데요?” 그러자 식당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유는 너그러운(?) 내가 희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머리숱이 적은 나를 보자 그 사람들이 눈치를 챈 것이다. 그래서 내가 또 그 교수 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는 설경구가 아니라 썰경굽니다.” 잠시 내 말을 이해 못한 듯해서 내가 덧붙였다. “학생 때부터 썰을 잘 풀었답니다.” 그때서야 모두가 웃었다. 그날 식당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상대방의 NG를 유머로 만들어버린 친구, 그것을 다시 유머를 토스한 나의 말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 순간 식당은 마치 가족 모임 같았었다. 만원의 행복 어느 날은 몇이서 추어탕 집에 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가 식사비를 냈다. 마침 10만권 수표가 있기에 그것으로 지불했다. 식사비 2만 4천이었으니 거스름돈은 7만 6천이어야 한다. 주인이 준 거스름돈을 확인 없이 그냥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내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사고 싶었다. 그리고 걸어가는 길에 무료할 것 같아 어린아이들처럼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지갑을 열고 보니 8만 6천원이 있었다. 거스름돈이 만원 더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식당으로 다시 가서 사실을 말하고 만원을 주었다. 그랬더니 식당 주인은 분명히 7만 6천을 주었다며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더 주겠다는데도 주인은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면 일반적으로는 그냥 주인이 받으면 끝나는 것 것인데 우리는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내용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음식 값으로 다투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인생 NG’라면 서로에게 자주 나도 될 것 같았다.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니까. 그 후 나는 그 집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그 주인에게 나는 좋은 손님으로 인식되어 미꾸라지 튀김이 덤으로 올라온다. 아무튼 그날은 결국 나에게 부수입에 생겼다. 그 만원으로 좀 뜻 깊은 곳에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 사업 실패로 붕어빵 장수를 한다는 어느 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던 참에 그 장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얼굴을 알아 볼까봐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니 손님이 없어 보였다. 내가 나타나자 깜작 놀라했다. 나는 식어 버린 붕어빵으로만 골라 두 봉지로 나누어 만원 어치를 샀다. 덜 담으라고 해도 넉넉히 담아준다. 그 자리를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붕어빵을 어디에 소진시키느냐는 숙제가 생겼다. 그런데 마침 종이 박스를 주워 모으는 할머니 한분이 보였다. 그래서 그 할머니에게 식은 빵이지만 드시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사양하시더니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한 봉지는 아파트 수위 아저씨를 드렸다. 결국 만원은 여러 명에게 행복을 주었다. 이처럼 ‘인생 NG’는 잘 이용하면 오히려 유익한 결과를 얻는다. 무엇이든지 고정관념보다 생각하는 관점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이제 ‘인생 NG’를 통해 행복, 기쁨, 유머, 포근함, 정, 폭소를 만들어보자. 그런 것들이 삶의 활력소를 만들어 줄 것이니까. ▣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나 요 셉 ● 나요셉 칼럼니스트의 서울포스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