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쓰다 만 기억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전철에서 바라 보이는 먼발치 풍경은 가을을 지나는 정취를 느끼게 한다. 유난히 파란 하늘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른 대기 입자가 강물로 내려 앉아 금새 강은 푸른 빛깔을 내 서편 바다로 흘러간다.
간간히 스치는 벙거지 모자를 쓴 낚시군들을 보아도 가을 햇살이 얼마나 강하게 내리 찌르는가 짐작된다. 만물을 더욱 단단하게 살찌우기 위한 마지막 볕에 이번 추석은 풍성하리라 믿는다. 어느해보다도 평온했던 기상 조건도 추수하는 농민의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C역에 도착하여 계단에서 내려다 보인 광장은 분주하다. MT를 떠나는 학생들의 무리가 반쯤을 차지하고 백화점 사이길에는 막바지 세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K를 만났던 나의 첫 MT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요즘에 부쩍 그가 생각난다. 3분에 한사발씩들이키는 그의 주량 보다도 밤새 '정치적 정당성'에 관한 그의 교주같은 설교에 놀랐다. 경춘도로의 자동차 불빛이 그의 눈에 들때면 광채를 반사하는 눈빛이 섬뜩할 정도로 그는 당시 무언가에 미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사실 더 이상 대화고 나발이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굳어졌던 것은 그가 더 이상 약한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따뜻할거라고 믿었던 부드러울 것이라고 믿었던 그를 베어내기란 나의 살점을 떼어내는 고통이었다.
聖誕節 과 四九祭
'지난 가을에 쓰다 만 기억'을 떠올려 보며 나는 지금 너른 들판을 지나고 있다. 금새 겨울이 되어 가을의 풍경은 어디에고 찾아 볼 수 없다. 노랗던 풀잎새도 빛을 바래버린 계절. 그리고 쥐죽은 듯한 시골의 느즈막한 오후에 논두렁을 걸어 새로 단장한 봉분 속 엄니를 뵈러 가는 길은 슬픔이다.
가을의 낭만에서 지금까지는 뭔가 한참 뒤죽박죽된 채 혼란의 연속이었다. 도심은 아기 예수 탄생으로 축제분위기인데 바람도 한 점 없는 적막속을 발자국 소리만이 바스락거린다. 이날도 하늘은 시야의 끝을 한없이 연장해도 푸르기만 하다.
비탈진 방죽 뚝을 기어 오르기가 까마득했었는데 지금은 아담하게 보일 정도고 귀신이 잡아 당긴다던 시퍼런 물도 모래톱이 보일만치 수척해져 있다. 솔가지 따기가 무섭고 험했던 서쪽의 산등성이 반질반질한 등산로로 변해버린 세월.
겨울방학 때면 무논을 얼려 얼음지치기를 하다가 모닥불 피워 젖은 옷을 말리고 고구마를 구워먹고 코가 시커먼 서로를 바라보고 킥킥거렸던, 12월의 보리밭에서 화루공을 치던 그 시절은 유별나게 폭설도 자주 내렸었다.
그 어릴적 오늘같은 성탄절에 누이들과 읍내 교회에 간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때 교회가면 떡준다는 소문이 파다했던지라, 교회 언덕배기를 올라가며 반신반의하거나 웬지 부끄러워 발길이 썩 내키지 않았었다. 누나들은 얻어 먹은 것 같았지만 나는 문턱에서 뒤돌아 집으로 달음질 쳤었다.
그후로도 나는 예수와 무관한 삶이었기에 러셀의 'Why I am not a Christian'을 읽는다거나..지금도 교회문을 나오면서 담배 먼저 맛있게 피우며 걷곤 한다. 설교중 '오병이어' 얘기가 나올 때면 당시 사건이 스쳐, 그때 떡 한조각을 얻어 먹었으면 예수님의 기름부으심으로 독실한 신자가 되었을까? 생각도 해 본다.
독실한 신자가 될 수 없기에 내 죄와 예수님의 피흘리심은 무관하며 내가 지은 죄는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도 지은 죄가 많다. 때문에 살아오면서 내가 지은 어떤 죄든 내 죄를 사해 주십사 기도한 적이 없다. 그렇게 기도한 적이 없기에 내가 잘 되기를 기도한 적이 없고, 잘 되기를 기도한 적이 없기에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도 저에게 많은 고통을 주시고 평안하지 않도록 더 많은 시험을 주시고 교만하지 않게 더 많은 슬픔을 주시고 그 슬픔이 우매자의 웃음보다 낫다는 솔로몬의 지혜를 알게 하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