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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고건, 대권도전 포기..명예를 선택했다

seoulpost서울포스트 2007. 1. 17. 02:29
고건, 대권도전 포기..명예를 선택했다
중도결집에 한계, 화해보다는 대결구도 한국정치 현실의 벽 실감
양기용 기자 (기사입력: 2007/01/16 20:55)

고건 전 국무총리는 16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중도하차를 선언할 예정이었으나 지지자들의 해명요구에 결국 회견장에 들어 서지도 못하고 준비한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의 활동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대선 불출마와 사실상 정계 은퇴를 밝혔다.

10여 일 장고 끝에 내린 이같은 결정은 움직이지 않은 지지율과 대권주자로서의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고 전 총리로서는 더 이상 대권주자에 연연한다면 지금까지 얻어진 명예를 송두리채 잃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이후 대선주자 여론조사 1위 자리를 빼앗긴 뒤 계속 지지율 하락을 보이던 고 전 총리는 최근 들어 모든 일정을 접고 깊은 구상에 빠져든 채 두문물출했다. 이에 따라 정가 일부와 증권가에서는 억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15일 측근들은 해명을 통해 고 전 총리의 칩거는 "한층 복잡해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정국구상에 몰두하고 있다"며 "조만간 새로운 정치 구상을 들고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고 전 총리는 오늘 과감한 중도하차를 선택했다고 보인다.

고 전 총리가 승부보다 명예를 선택한 것은 현 지지율이 더 이상 오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또한 범여권 내를 중심으로 한 '고건 신당'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은데다 그가 주장한 원탁회의 등도 진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이 중도하차를 결심케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고 전 총리의 신중하고도 여론을 의식하는 '행보'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친 고건파로 알려진 열린우리당 김ㅇㅇ 의원은 "안 될 것을 뻔히 아는데 계속 '고'하는 것은 고 전 총리의 성격과 맞지 않다"며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장고 끝에 대승적인 결심을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갑자기 중도하차로 마무리한 진짜 배경에는 갖가지 풀리지 않는 의혹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 전 총리는 전날만 해도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우리는 검증되지 않은 일꾼에게 연습시킬 시간이 없다"고 써 당찬 출발을 예상한 지지자들에게는 황당함 자체인 셈이다.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결정하면서]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말씀드립니다. 저는 본래 정치권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탄핵정국의 국가위기관리를 끝으로 평생 공복의 생활을 마감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과분한 국민지지를 받게 되어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모색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일년 가까이,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찾아 진력해왔습니다. 그러나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합니다. 저의 활동의 성과가 당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여론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드립니다.

그동안 저는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저의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누차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대선의 해를 여는 새해 첫달 지금이 그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고뇌 끝에 저는 제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오늘부터 정치활동을 접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제게 베풀어 주신 국민 여러분의 사랑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보다 훌륭한 분이 나라의 조타수가 되어 하루빨리 국민통합을 이루고 나라에 희망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7. 1. 16일 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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