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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칼럼] 은장도와 니뽄도

seoulpost서울포스트 2007. 3. 5. 19:58
 
[칼럼] 은장도와 니뽄도
양기용 기자 (기사입력: 2007/02/08 00:21)

사랑이 저만치 가네

은장도의 용도는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상해함으로써 더 이상 수치스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호신용이자 정당 방위를 위한 무기다. 과거 드라마에는 은장도 연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수 년동안 그 활용의 예가 보이지 않음은 이제는 쓸 가치도 없어져서인가 보다.

은장도가 호신용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수절한 과부가 허벅지를 바늘로 콕콕 찔렀다면 바늘 대용으로 그 칼을 썼던 정절자도 있었으리라. 이 정도로 자신을 상해하면서 참아 낸 인내는 위기 순간에 남도 능히 상해할 수 있다. 자해용이 공격용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반면 니뽄도는 공격적이다. 눈을 응큼하게 뜨고 번뜩이는 것을 추켜 세운 풍신수길이나 이등박문은 한국인인 우리에게 야비한 침략자로 각인되어 있다. 그 니뽄도를 들고 대동아를 외치다가 폭싹 망한 적도 있다. 과욕에 의해 설쳐대다가 스스로 배를 갈라야 한 경우도 있다. 공격용이 자결용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최근 거대 야당내 대권 인기 1,2위를 다투는 주자들 사이에 벌어진 일은 검은 머리 파뿌리의 주례사가 끝나자마자 각자의 행진을 하는 것같다. '애 낳아 봤어?'와 '군대도 안 간 기..'라는 설전은 상생하려는 한 집안의 모양새가 아니다. 상당히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일촉즉발 동상이몽의 수 싸움과 흡사하다. 사람(부부)사이에는 어떠한 경우도 근본을 건드리거나 꺼내는 언사는 금해야 한다. 이것이 금도이다.

이러한 두 주자를 놓고 깨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50%를 넘어섰다. 당내에서도 자제를 당부하는 분위기라서 지금은 잠복기로 접어든 것 같지만 이 문제는 쉽게 경선승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같아 보인다.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은 후보를 포기할 단계가 이미 지났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근거를 두고 죽어가는 한나라당을 살려 낸 공신이라면 이 전 시장은 한나라당을 업고 대권으로 가는 방법을 10년 이상 차근차근 학습하고 기초를 다졌다. 당을 건재하게 유지한 박 전 대표 입장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억울할 일이다.

서로를 좌익으로 보는 한나라당내의 두 시선

당내 경선불복자에 출마가 금지된 법이 있기에 두 사람 모두 승산이 모호하면 경선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경선불복자 출마금지법은 악법이자 공산주의 법이다. 박 전 대표가 검증카드를 예리하게 꺼낸 것은 당에 기여도가 자신보다 덜한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주자가 되는 것도 달갑지 않지만 그것을 인정해도 대선 막판에 각종 게이트로 추락한다면 박 전 대표의 공로는 물거품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선택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것으로 대세가 결정되었다면 거대한 두 마리 용이 선거 막바지 위험을 무릎쓰고 한 집안에서 싸울 이유가 없다. 깨끗이 갈라 서 한나라당 1,2중대끼리 싸움을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동서화합을 주창하는 박근혜-김대중 연대가 가능해지며, 범여권을 포함하는 이명박-노무현 연대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이쯤되면 한나라당 1,2중대라는 본질은 사라져 버린다. 왜냐면 한나라당내 지지자들도 그들 편의에 따라 원조 보수를 내세우며 언제든지 갈라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근혜가 김정일과 웃었다는 이유와 친 호남 성향을 가진 이유를 들어 빨갱이로 보는 반면, 박근혜 지지쪽에서는 이명박을 친 노무현과 주변의 좌익운동 경력자들을 들어 좌파로 못박고 있다.

이러한 싸움을 근절할려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색깔을 바꿀려는 시도도 있겠지만 자칫 이것이 집권 후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는 거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2대선 직후 지금까지 집권당의 2회에 걸친 분열 사태가 남의 나라에 있었던 추억이었는가.

아무리 말하기 쉬운 똘레랑스라지만 남북이 첨예하게 겨누고 있는 상황이 지구상 유일한 대한민국 하나이기에 쉽사리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일 수 있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준엄한 현실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10년 이상씩 공을 들여왔던 두 후보의 '오월동주'같은 모습에서 다 잡은 권력이 순탄하게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징조가 이번 열린우리당 탈당사태이다. 전선의 첨병 역할만 할지, 세몰이의 구심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이제 입춘이 지나 따스한 햇살이 코트를 벗기고 있다. 두터운 옷을 벗기기에 우화처럼 강한 바람이 아니어도 된다지만 권력을 향한 회오리바람은 빤쓰까지 훌떡 벗겨버린 예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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