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31지자체 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겠다는 한 정치인이 '청와대 허물고 그자리에 서민아파트 짓고 싶다'고 말했을 때 참 쌩뚱맞게 들렸다.
오세훈이 내 건 생수판매같은 이미지도 아니고, 강금실이 속삭인 보랏빛 애교도 아니고, 임웅균의 신나는 가곡풍의 공약도 아닌 '청와대에 서민 아파트를 짓겠다니' 파격적이지만 너무 진부한 개념의 공약 아닌가 생각되었다.
요즘 유권자들은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큰 집을 짓는다고 하면 식상해 한다. 그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장난감같은 (정치)놀이를 좋아하고 거국적이며 세계적인 설계보다 즉흥적이고 현실적인, 그러면서 추상적인 얘기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나 케네디 상 보다는 인기 위주의 원빈이나 김태희같은 스타일리스트를 더 쫒아 다닌다.
당연히 그런 인기몰이로 당선된 사람은 국내용으로 한반도를 떠날 비행기 트랩을 오르면서 오금지가 저려 외국땅을 밟자마자 오줌을 저릴 것으로 보인다. 경험했듯 그런 사람이 어찌 세계속의 한반도를 논할 것이며 국가를 경영할 것인가.
김경재 전 의원은 당시 박주선 후보에 밀려 시장후보도 되지 못했지만 오늘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그와 잠깐 가진 시간에서 서민아파트타령을 고루하게 받아들였던 나의 선입견이 깨지고 말았다.
토요일 오후 여섯시 반. 지인 몇이서 고스톱이나 칠려고 오라는 자리인줄 알았는데 사무실에 들자 소탈한 차림의 김 전 의원은 벌써 도착한 사람들과 입담을 벌인 뒤였다. 내려다보이는 한강을 가리키며 뭔가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일면 악수를 하고 콩떡과 티백 녹차를 마시며 화톳불 피운 사랑방같은 자리에서 함께한 그들의 격없는 얘기는 대략 이랬다. (주요 의제 정리=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갑ㅇㅇ : 사무실 한번 잘 얻었다. 나는 맨날 요 옆 순복음교회는 오는데 여의도에서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을 처음 올라 와본다. 하하
김경재 : 원래 여기가 사업이 잘 된 회사가 세 들어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제가 1순위로 예약을 해 놨는데 그 양반들이 더 큰 빌딩으로 이사하고 연락이 왔길래 두 시간 만에 계약을 한 곳입니다. 한강의 시원스런 물줄기가 흘러들어 오는 것을 보며 저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역사의 흐름도 늘 생각하고 배우는 곳이지요.
을ㅇㅇ : 정치사적으로 보면 민주당의 역사가 기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전 의원께서 오는 4월 3일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셨는데 내외적으로 많은 변수와 어려움이 있다. 현재 분위기는 어떤가?
김경재 : 우선 말씀드릴 것은 뿌리 깊은 민주당이 이번 전당대회를 마지막으로 없어질 것 같은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사실 한화갑 대표께서 당을 끌어오는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야당도 여당도 아닌 상태로 사당화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인적 자원도 충분치 않았고 당의 중진들은 망가진 책임을 지고 빠져 있는 것이 옳은 방식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열린당이 40%대 지지율에서 9%대까지 추락하는 동안 그 유동 지지세력을 민주당에서 하나도 담지 못했다는 겁니다.
열린당이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민주당 지지율이 4%대에 머무는 것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정당, 결국 수구적으로 닫힌 정당의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장상 대표가 직무정지 가처분 상태에 놓인 것도 합리적인 당 운영보다는 독단적이고 결국엔 전통의 민주당을 청산하겠다는 복심을 읽었기에 행해진 당원들의 조치라고 보아집니다.
병ㅇㅇ : 열린당의 붕괴와 노 대통령의 탈당은 엇박자인 것 같다. 다시 말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열린당이라면 대통령이 탈당했으니까 붕괴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김경재 : 저는 노 대통령을 만든 공신입니다. 결정적으로 당선 후 미국을 갔다 오면서 틀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쫌 있다 얘기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좌익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분은 순수한 좌익도 아니고 권력을 찾아 왔다갔다하는 마키아벨리적 권력추구 지상주의자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진정한 좌익은 그러지 않습니다. 물론 그 주변에는 확실한 좌익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좌익도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고요..
음..대통령 당선되고 미국 방문 때 제가 유일한 정치인 수행자였습니다. 지금 보니 동지로 데려간 것이 아니라 제가 미국통인고로 뉴욕한인 환영회에서의 역할만 기대한 것 같아요. 제가 뉴욕서 신문사를 10년 쯤 했는데 대통령을 둘러싸고 한인들끼리 주도권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우려해 사람을 좀 가려달라는 것이었죠.
당시 경제인 위주로 사절단을 짤 정도로 민주당과 호남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습니다. 당선돼서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면 뭐하나? 나 미국 안간다"해서 노사모나 반미자에 상당한 인기를 얻어 놓고 막상 미국을 가니까 미국인 앞에서 쩔쩔 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눈에 훤히 보였어요.
코리아소사이어티 초청 만찬에서 원고에 없는 미국찬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용인즉, '미국이 한국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어요. 아첨치고는 좀 뭐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더군요. 허겁지검 원고를 획인해보니 누가 집어넣었는데 아마 친미파들이 겁을 준 모양입디다. 소위 '미국에서 한국에서처럼 발언하면 빨갱이로 몰아 성하지 못할 것이다.'고 겁을 준 것 같아요.
호텔로 돌아 왔는데 기자들이 한국으로 타전을 해야겠다며 나에게 코멘트를 요구한 것이예요. 들들 볶이다가 한마디 궁리 끝에 한마디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고. 듣기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기막힌 코멘트였죠.
국가 원수 정도면 체통을 지켜서 '50여 년 전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작은 나라 전쟁에서 4만여 명의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다..'뭐 이런 식으로요.. 사실 이런 말을 저 김경재는 대통령에게 직언했습니다. 그런 것이 섭섭했는지 호남인을 귀찮은 씨엄씨 취급하여 당깨고 나간 것입니다. 지금의 탈당도 그 분 권력자리유지 욕구 외에는 다른 뜻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정ㅇㅇ : 그래도 지금은 조순형 의원도 보기 좋게 복귀하셨고 박상천 전 의원도 당권 도전에 나서서 당이 상승무드를 타기에는 좋아졌다.
김경재 : 표면적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했듯 민주당이 아예 없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저는 과거부터 통합과 화해를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한화갑 전 대표만 보더라도 건건이 전부 소송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아 왔던 것은 외부에서 '저 사람들 또 싸우네'라는 소리 들을까봐 걱정이 앞섰죠.
3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이 몰락할 때도 조순형, 추미애 싸움과 나머지 개인들의 이기심이 결정타였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지역구 선거운동을 미루고 추미애 의원을 설득하러 내려갔지만 실패했고 대구서 선거운동하는 조순형 선배를 찾아가 두 분이 화해 연출극이라도 벌이라고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끝내 불발이었어요.
그 전에 호남에서 3,4선한 철밥통들은 호남을 신인후배에 양보하고 중앙무대로 올라가자고 했던 겁니다. 한화갑, 박상천, 김충조, 김옥두, 김상현, 정균환, 저까지 약속했다가 저 빼고 전부 꼴랑지 내리고 유턴한 겁니다. 게다가 수도권 지역의 임창열, 이태복을 비롯한 20여 명은 민주당 공천장까지 반납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탄핵역풍에도 불구하고 당시 35%의 민주당 지지가 있었는데 말이죠..결국 민주당의 몰락은 근성 부족입니다. 큰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죽드라도 수도권에서 죽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무ㅇㅇ : 김홍업씨가 신안.무안에서 무소속으로 나갈 모양이다.
김경재 : 인물 자체로만 보면 김홍업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외국물도 많이 먹어 식견도 있고 경륜도 풍부하죠. 우수한 의원감입니다. 그러나 복수심 때문에 나가는 것인지 모르나 지금은 무소속을 선택해서 무리할 시기가 아니라고 봐요. 신안.무안지역은 누구도, 어느 당도 장담을 못할 지역으로 (미안하지만) 한화갑 선배가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지난 지방선거 등에서 민주당 몰락했잖아요?
김 전 대통령께서도 반대하신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비서실장으로 박지원 선배가 임명되었으니 현명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홍업씨 입장으로는 차라리 다음을 기대하고 지금은 뜻을 접는 것이 차기에 확실한 보장이 있고 더 감동적일텐데..
기ㅇㅇ : 4월3일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에 장상 대표와 박상천 전 대표 양 강에 김경재, 심재권, 김영환 전 의원까지 최소 5명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비전과 각오로 임할 것인가?
김경재 : 우선 민주당을 지키고 브랜드를 계승하는 쪽에 촛점을 맞췄습니다. 민주당이라는 브랜드는 일본에서는 제1야당이고 미국에서는 집권당이죠. 이 '데모크라틱 파티(Democratic Party)'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 이것을 지키면서 로드맵을 가지고 누가 네비게이션하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현재의 장상체제는 열린당 탈당파와 무원칙한 합당에 쉽게 동조하는 모모 의원 등등하고 교섭단체 만들어 쉽게 팔아먹겠다는 뜻인데, 그럼 지금까지 민주당을 바라보고 지켜왔던 사람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거죠.
그래서 저는 네 가지 공약으로 이번 당 대표 선거에 임하겠습니다.
첫째, 당 대표로 선출된 후 6개월 이내에 민주당 지지율을 15%까지 책임지고 올리겠습니다. 이는 현재 민주당으로 오겠다는 10명 이상의 열린당 의원을 제가 확보한 상태로 그들 외에 유능한 인사들에게 통합차원에서 문을 활짝 열어 놨습니다.
둘째,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을 상대로 대선 빚 40억원을 반드시 받아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열린당의 실정 책임까지 묻겠습니다.
셋째, 당내 민주화를 위해 당의 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가능한 조속히 전환시키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사람이 윈-윈 하는 당 운영을 하겠습니다.
네째, 통합관련 당의 진로는 반드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이상 네 가지로 정말 민주당과 함께한 37년을 결산하고자 합니다. 애증이 있고 저의 청춘을 다 받쳐왔다고 자부한 민주당에서 소외받은 당직자들의 애환을 알아 줄 사람이 저 김경재 한사람 뿐이라고 자부하기에 이번 전당대회를 감동적으로 치뤄 국민의 신망을 받는 민주당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민주당의 혈통을 지키고 키우기를 열망하는 많은 분들과 저 김경재는 앞으로 당원과 국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저와 민주당이 꼭 욱일승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