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자유경쟁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면서도 교육분야의 자유경쟁을 부정한다. 노무현은 지난 8일 교육 ‘3불정책(고교등급제·대학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을 폐지할 경우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입시를 통한 계층 이동의 통로를 봉쇄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노무현은 본고사를 부활하면 “사교육이 넘쳐 학부모 등이 휘고 아이들은 코피 터질 것”이라면서 “부잣집,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은 대학 가고 아닌 사람은 못 가고, 그렇게 해서 몇몇 일류 대학 나온 사람만이 요직을 독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런 발언은 계층간 갈등을 부추기고 계급적 선동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사실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노무현은 취임이후 줄곧 양극화 문제를 정치적 선전선동의 주제로 이용했다. 그는 교육문제도 동일한 차원에서 계급적 갈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다르다.
모든 사람의 인격이 동등하다는 대원칙 아래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원칙은 자유경쟁밖에 없다.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고 능력없는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사회정의의 기본원칙이다. 따라서 학교도 성적이 우수한 사람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성적이 모자라는 사람이 나쁜 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고교평준화는 이 원칙을 부정하고 있다. 다만 이 원칙이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또 다른 원칙이 필요하다.
현행 고교평준화는 학생들의 능력에 의해 학교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능력에 따라 아이들의 학교를 배정한다. 이야말로 기회균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예를 들어 시골에 사는 학생은 빼곡이 들어찬 강남의 학원에도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강남의 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다. 자유경쟁이 허용된다면 시골학생도 열심히 노력하고 성적이 좋으면 강남의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라는 이름 하에 실시되고 있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할 수 없는 한 강남에 있는 학교로 시골학생이 입학할 방법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오직 성실과 능력뿐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여 성적을 높이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제도하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현행 고교평준화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대로 불리한 제도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마치 고교평준화가 가난한 학생들에게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따라서 대학본고사가 실시되면 “부잣집,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은 대학 가고 아닌 사람은 못 가고, 그렇게 해서 몇몇 일류 대학 나온 사람만이 요직을 독점할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대학본고사가 실시되면 학생들이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목표로 입시준비를 할 것이다. 가난한집 학생도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을 올리면 그 대학에 갈 수 있다. 또한 각 대학마다 특성화되어 자연스럽게 대학서열도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연대 고대 하는 식의 대학 서열은 의미가 없어지고 어떤 분야는 어떤 대학이라는 식으로 학교의 평가가 다양화될 것이다.
오직 수능고사 성적과 내신등급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숫자로 표현된 서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대학교도 서열화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부모의 재산 정도가 예를 들어 강남에 거주할 정도가 되지 못하면 학원으로 꽉 들어찬 강남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도 없다.
노무현은 외국어고에 대해서도 “전문가를 양성할 생각은 않고 입시 학교가 되어, 그 사람들이 본고사 하자고 자꾸 흔들어서 학교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비판자체는 옳다. 그러나 비판이 곧 해결책은 아니다. 비판만 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적 비전도 전문성도 없으면서 계급적 갈등만 부추기는 선전선동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고교평준화제도하에서, 어느 학생이 속한 지역의 학교가 학생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정도로 좋은 학교가 없다면, 시험에 의해 진학하는 외국어고에 진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국어고에 진학하는 목적 자체가 외국어 전문인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그저 그런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싫어 보다 나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기 위해 진학하는 것이다. 따라서 능력이 좋은 학생을, 외국어 전공 여부와 관계없이 외국어고로 내모는 것은 바로 현 고교평준화제도 때문이다. 보단 근본적인 문제가 고교평준화에 있음에도 이는 부정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나타난 외국어고 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기본인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기여입학제는 자유경쟁이나 기회의 균등과 전혀 관련이 없으니 삼불정책의 다른 두 가지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기여입학을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방향으로 연결시킨다면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도 없다. 어차피 현행제도 하에서도 부자들은 혜택을 보고 있다. 일류대학에 부자집 자녀가 더 많이 진학한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이 결과가 현행 고교평준화제도 탓이란 것은 이미 말했다. 그리고 쉽게쉽게 내려고 하는 수능시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여입학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그 혜택을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의 기회 확대와 연결시킨다면 사회정의의 실현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정책과 관련하여 “부잣집, 많이 배우고 돈 많은 사람은 대학 가고 아닌 사람은 못 가고, 그렇게 해서 몇몇 일류 대학 나온 사람만이 요직을 독점할 것”이라는 발언은 지나치게 계급적 갈등을 부추기는 선전선동에 가까운 것이라 노무현의 사회인식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인식은 정책적으로 정확한 진단에 바탕을 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자신이 그렇게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대비시키면서도, 그래서 양극화를 정치적 이슈로 계속 제기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이 있는가라고.
노무현이 강남을 공격하면서 주택가격을 잡겠다고 직분을 걸고 공언하였지만 결과는 오히려 참담하다. 차라리 강남의 집값은 그냥 시장에 맡겨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 공급에만 신경을 썼다면 오히려 결과가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서민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주택공사도 탐욕스러운 기업으로 변했고 택지를 공급하는 토지공사 등 각종 공기업들도 이익 경쟁에 뛰어들어 판교로또가 탄생하게 되었다. 노무현이 그렇게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대비시키면서 갈등을 부추기지만 실제로 그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다.(뉴데일리 정창인 객원칼럼니스트)
*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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