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는 한국경제와 우리기업에 도전과 시련의 기회
2007년 4월 2일, 막판의 숨 막히는 과정을 넘어 미국과의 FTA 협상이 드디어 타결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미 FTA를 ‘제3의 개국(開國)’이라며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안 좌파적 정책성향과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국정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었던 청와대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쉽과 결단 때문에 많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개방 없이는 지속적인 발전이 어렵고 도전 없이는 성공의 기회마저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FTA 체결은 잘 한 선택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한미 FTA의 타결은, 분명히 우리나라 역사상 ‘일대 사건’입니다. 협정 내용이 두 나라의 국회에서 비준을 받기까지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가 있습니다만 효력이 발휘되면 한미 FTA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와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경제적 측면에 국한해 보아도 GDP 기준 경제규모가 8천억 달러쯤 되는 우리나라가 그것의 15배가 넘는 약 13조 달러의 세계 최강 미국과 상호 빗장 풀고 대등하게 경쟁하자는 것이니 왜 아니 그러하겠습니까? 흔히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에 우리 상품의 접근도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진 때문에 한미 FTA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된다고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뒤짚어 생각하면, FTA 이후 우리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조차 이전에 없는 극심한 경쟁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미 FTA는 미국 기업과 미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세계 초일류 기업들에게는 문턱이 낮아진 한국 시장의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경쟁국과 대등한 제도적 경쟁 환경의 조성
FTA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한국 경제와 우리 기업에 도전과 시련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득(得)과 실(失)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음입니다. 제대로 준비하면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이어지게 됩니다. 준비와 관련,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 기업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제도 및 정책 부분입니다. 경쟁국에 비해 우리 기업들이 좀 더 유리한 제도적 환경 하에서 활동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업관이나 규제의 관성을 이해한다면 이런 바램은 하나마나입니다. 따라서 그럴 수 없다면 우리 기업들로 하여금 최소한 미국의 기업과 동등한 조건, 제도적으로 대등한 여건 위에서 경쟁해나갈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의 재정비를 해야 합니다. 이웃 농장의 말들은 경주하자며 무너진 둑을 넘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우리 농장의 말들은 발목에 크고 작은 족쇄를 차고 있다면 승부는 해보나마나이겠지요.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기업 관련 제도와 정책에서도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기업관 때문에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성 정책들이 널리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대기업들이 적용대상인 규제이며, 이미 대기업의 주 활동무대가 지구촌으로 확산된 열린 경쟁시대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여전히 강한 관성-경로의존성(historical path-dependence)이 견지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규제 유지를 둘러싼 견고한 이해관계구조를 혁파하고 동등 조건의 경쟁환경 조성을 더 이상 늦출 일이 아닙니다. 한미 FTA 발효 시점을 2009년으로 본다면 그 전에 필요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더 늦어지게 되면 미국의 기업과 미국의 자본까지 국내 대기업 규제에 대한 이해관계구조에 가담하게 되고 그 때는 뜻이 있어도 제도를 개혁하고 정책기조를 바꾸기가 더욱 힘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4월 4일 권오규 부총리가 ‘한미 FTA를 계기로 기업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나가고 ‘특히 한국기업이 미국 기업에 비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한 한편, 적확하게 맥을 짚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개방경쟁 환경에 어긋나는 정책방향 들
그러나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정부 내에서 조차 권 부총리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 않는 부처가 많습니다. 4월 6일 한국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현재 법제처가 심의 중인 상법개정안과 별도로 상법특례법안을 마련해서 8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상법 개정안에 임의규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집행임원제를 대형 상장사에 대해 강제적으로 일괄 적용되는 방안을 포함시킨다고 합니다.
또 대기업 차별 규제입니다. 여기서 집행임원제는, 이사회의 업무감독과 집행기능을 분리하고 비등기 집행임원의 법적 지위 및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를 표명하나 동 제도는 우리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고 기업의 지배구조 선택권을 제약한다며 경제계에서 반대했던 사안입니다. 선진국 중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이 같은 제도를 법률로 강제하는 경우가 없고 보면, 우리 기업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우리나라에 국적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한미 FTA 시대에도 ‘우리가 만든 우리 만의 족쇄’에 계속 묶여 있어야 할 모양입니다. 반대로 대한 상의 조사(‘07.3.19)에 의하면 KOSPI 200대 기업의 과반수가 적대적 M&A 위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하는데, 우리 기업에게도 미국 기업에 허용된 수준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허용하는 방안은 검토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한미 FTA가 타결되는 4월 2일 그 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도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출자총액규제를 완화하는 안이 통과되었다고 그 나마 안도하고, 시민단체는 출자규제와 별도로 순환출자금지 조항을 도입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합니다. 제게는 이 둘의 입장이 역할을 바꾼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상하게 보입니다. 출자규제는 이미 1987년에 만들어졌으며 개방이나 세계화가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던 대단히 오래 전의 경제구조 하에서 생성되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당초에는 일본의 제도를 모방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획일적인 사전 규제’가 경제논리에 부합되지 않으며 열린 경쟁시대에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을 제약한다며 폐지한 이후 전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역차별 규제입니다. 게다가 자산총액 10조원이상의 기업집단, 동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 중에서도 2조원을 넘는 중핵계열사에 대해, 당해 회사의 출자한도액은 순자산액의 40%로 한다는 개정 내용은 그 적용범위만 다를 뿐 40% 기준은 딱 1987년 기준입니다. 25% 기준에 갖가지 재량적 판단이 포함되는 적용배제?예외인정의 복잡하고도 길고 긴 유전과정을 거쳐 1987년 시대로 되돌아 간 ‘대단히 한국적인 제도’에 대해 경제계가 안도했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요?
미국의 경쟁법 재해석 동향과 시사점
우리와 달리, 세계 최강이자 우리의 FTA 상대국인 미국에서는 반독점법 관련 소송에서 친시장적(親市場的)이고 친기업적(親企業的)인 판결이 잇따르고 있어 주목할 만합니다. ‘07년 3월 19일 LA Times는 ‘반독점법의 이빨이 빠져가고 있다(Antitrust law losing its teeth)’는 제하의 기사에서 기존의 반독점법 해석과 배치되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대규모 정유회사인 텍사코와 셀이 서부지역에서 가솔린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하기로 한 합작회사가 반독점법에 위배된다는 하급심의 판결이 있었는데 작년에 대법원에서 뒤짚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가격의 담합 가능성은 있지만 그 가능성 만으로 서로 경쟁한 적이 없는 서부 지역에서의 합작회사 설립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끼워팔기’에 대해서도 번복 결정이 있었습니다. 어떤 특허 기술을 가진 기업이 특허기술의 상품과 다른 상품을 끼워 파는 것은 대개의 경우 특허 제품의 시장지배력에 기초하여 다른 회사의 제품구매를 강제함으로써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 중론(衆論)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소비자의 대체 상품 선택가능성을 언급하며 끼워팔기를 불법으로 보는 규정과 다른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미국 대법원 판례의 이러한 추세는 1911년 이후 수직적 가격고정(vertical price fixing)을 ‘당연위법(per se illegal)`으로 보아 왔던 오랜 전통 마저 깨트리고 ’합리원칙(rule of reason)`에 입각한 판단으로 전환하면서 절정에 이를 듯 합니다. 이와 같은 미국 대법원의 판례들은 경쟁의 글로발화와 급속한 기술진보로 인해 과거적인 시각에서 형성된 반독점법은 경쟁촉진적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처럼 20년의 과거 시각을 오늘에 되살려 21세기 글로발 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행동을 해석하고 발목잡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로 하여금 그들 방식대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해야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고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과거의 판결을 수정하고 있음 입니다. 우리도 서둘러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과의 FTA가 본격적으로 발효되기 전에 우리 기업들이 미국의 기업과 대등한 조건에서 활동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정비해야 합니다. (올인코리아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