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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꽃피는 봄이 오면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3. 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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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오면
목련은 '목련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보리 색깔로, 가곡으로, 초봄의 전령으로..
양기용 기자 (기사입력: 2006/03/26 18:39)

길 건너집 정원 안의 목련봉우리가 귀를 내민다.
여름철 잎이 빼곳이 들어 차 땅바닥에 이끼가 낄 정도의 작은 숲이었는데 무슨 마음이었는지 지난 초겨울에 가지치기를 하더라. 그래도 목련은 가을 낙엽을 떼어 내면서부터 꽃망울을 준비하던가? 하여간 햇살 따스해지자 꽃중에 젤 먼저 봉우리가 탱글탱글하다.

목련꽃은 북쪽을 향해 입을 벌린다.
아마 남풍이 시샘도 하는 계절이라서 그러리라..생각해 본다. 이 목련은 '목련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보리 색깔로, 가곡으로, 초봄의 전령으로, 꽃잎의 연약함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목련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 키보다 훌쩍 높은 곳에 매다려 있기도 하지만 2,3일 활짝 피어 떨어질 때는 감똥같은 갈색으로 길바닥에 뒹구는 꽃잎이 추해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도 그집 대문을 열고 나오신 할아버지가 먼저 인사를 하신다.
(항상 똑같이)"안냐세어~?" 구부정한 허리춤에 오른손을 얹으시고 박스를 수집하러 가시는 길이다.
"아..예, 건강하시죠?" 무엇이 급한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10에 7할은 할아버지를 간과하고서 내가 나중에 겸연쩍게 인사를 드린다. (후레자식같은)나는 부랴부랴 벤츠(?)에 물건을 싣고 세상을 맛보러 달음질치곤 했다.

이사온지 며칠되지 않아서 90 할아버지로선 꽤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인기척이 없더니 어느날 '할렐루야'가 흘러 나왔다. 기도를 하고 나온 10여명의 교인들을 보았고 며칠동안 할아버지를 뵐 수 없었다.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누우셨다는 얘기다. 돌아가신다면 문상은 가야지? 그집 식구들과 다른 이웃들과 아직 낯선 시간인데.. 사실 고민은 했었다.

십수 해 전, 국문도 모른 채 예수를 영접하고 임종 기도 때 기적이 일어난 큰아버지와 같은 상황같다.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떼고 집안 식구들이 수의를 준비했다가 1년을 더 사셨던. 그리고 그 뜨거운 여름 아버지가 먼저 가셨던 기억이 스친다.

흔히 도시에서의 죽음의 방식이란 병원 정문으로 들어가서 후문으로 나오는 것을 끝으로 세상과 단절한다. 거래처 한군데가 병원인데 거길 갈 때 가끔 겪는 혼란이다. 내가 실려 나간다는..화들짝 정신이 들어서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각박하게 사는 건 아닌지, 세상이 각박한지..이 역시 혼란스럽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왠 죽는 생각인가.
이는 친구의 갑작스런 부음처럼 김형곤의 비보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곤이 나와 동년배다. 일면식도 없지만 강남 한복판에 코메디클럽을 차려 놓고 선후배들과 열심히 웃음을 나눠준 코메디의 원로(?)다. 경기 좋을 때는 일대 돈텔마마와 함께 '놀이' 1번지였는데, 그 가게에 물건을 팔아 먹을려고 몇번을 머리 들이 밀었지만 바로 두어달전 완전 폐업을 해버렸다. 기회는 김형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돈텔마마도.

작년 여름. 그는 '풍자가 사라진 한국코메디는 죽었다'고 단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표현이 더 자유스로워졌다는 문민, 참여정부에서 웃길 일도, 웃을 일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뚱뚱한 그 친구가 의외로 시대에 민감했었다는 것을 그가 가버린 다음에 알다니..그가 피터지게 코메디부흥을 외쳤던 것은 분명하다. 노빠라는 불량한 시대의 바이러스가 구축해 버린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렇게]..
▷盧武鉉 풍자에 넘어가는 관객들.
코미디의 본질이 풍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코미디에서 풍자가 사라졌다. 그 암울했던 5共 시절에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같은 시사 풍자 코미디가 있었고, 그 후에도 「탱자 가라사대」, 꽃피는 봄이 오면」과 같은 시사 풍자 코미디가 있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는 시사 코미디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 스토리도 없고, 내용도 없는 1분 내지 3분 짜리의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허무한 코미디만 판을 치고 있다.

한국 코미디에서 풍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필자는 지금 대학로에서 「엔돌핀 코드」라는 두 시간짜리 코미디극을 진행하고 있다. 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하면,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모두 뒤로 넘어간다.

<盧武鉉 대통령이 눈꺼풀 수술한 데 대한 반응이 둘로 갈라집니다. 盧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죠. 『어머, 대통령 눈이 참 커졌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럽니다. 『눈까고 앉았네』> 아마 필자가 이런 얘기를 공영방송에서 했다면, 노사모가 『김형곤이 저 자식 죽이네, 살리네』 난리가 났을 것이고, 그날로 20여 년간 유지해 온 내 코미디언 생활이 끝장났을 게 분명하다.

노사모를 욕하려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가지고 풍자를 하면 「박사모」가 『김형곤이 이 무례한 놈을 죽이겠다』고 피켓을 들고 방송국으로 몰려왔을 게 확실하다...◁


나는 아직도 베란다 파이프에 몸을 기대고 있다.
작년에 화분으로 옮긴 소철나무는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단풍을 몇 번 심어 실패했던지라 상록수로 바꿔 보긴 했지만 난 여전히 단풍나무를 더 좋아한다. 활엽수는 1년을 주기로 낳아서 자라서 죽은 것을 반복한다. 유약한 새싹이 돋아 너른 잎이 되고 그늘을 만들어 주고 또 형형색색의 계절을 지나 긴 휴면을 맞는다.

혹자는 늘푸른 기상의 소나무를 쳐준다.
엄동에도 끄덕없이 버티는 에버그린이 좋아 매화나 대나무를 곁들여 꼿꼿함을 숭상한다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산야가 황량한 나목으로 잠들어 있을 때, 듬성듬성 푸르름을 띠고 있다는 것이 어째 주변과 부조화스럽기까지 해 보인다. 아무리 군락을 형성한다해도 대자연의 질서로는 어림도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달리는 동안 너무 오래 코메디를 잃어서 나의 웃음이 타인에게 우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지. 나의 우스게소리가 타인에게 비양거림으로, 나의 볼멘소리가 그들에게 눈물로 다가가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오늘은 마침 셔터 내려진 코메디클럽을 지날 코스다. 혹시 열었나 딜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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