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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빈치 코드' | 80년대인가? '예수를
사랑한 여인'-[막달라 마리아]라는 영화가 있었다. 성경에도 예수의 가장 가까이 있는 여인으로 나오고 예수의 죽음도 젤 먼저 발견한다.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지금 [다빈치코드]는 예수탄생 정확히 2000년(A.D 4년생)만에 만든 영화다. 올해는 유다복음도 공표되었고
때를 맞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한 성생활도 聖한건지 性한건지 말들이 많다.
하여간, 짧은 순간, 감각으로부터
은밀히 토해 내는 거친 호흡를 나는 性이라고 한다. 짧은 순간, 절제된 언어로 도도히 발산하는 맑은 언어를 나는 聖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聖직자는 性직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性종사자는 聖인이되기도 한다. 性 과 聖 - 이것은 생명이 쇠진할 때까지 영원히
풀 수 없는 인간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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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 |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11분' 속의 실제 인물 '브라질 産 마리아'와 두
'마리아'
성이 주제인 것 같지만 실존 인물인 브라질 처녀 마리아가 '해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는 형식을 취하였다는
점에서 고행 속의 깨달음이라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주인공 마리아가 깨달았다는 내용이 아니라 작가는 성의식이 결국 종교적인 행위에
갈음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이야기는 섹스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어디선가에서부터 우리 일상에서 '모순되고
뒤틀린 것'으로 잘못 인식될 위험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 것이 '성' 아닐까.
작가는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알 하나하나에 '세계의 영혼'을 부여하면서 남녀사이의 육체적 접촉과 쾌감을 분석한다. 결국 사람의 육체적 삽입 시간 11분을
의미하는 제목에서 보듯, 그 시간이야말로 구도요, 구원에 이르는 시간이라고 설파한다.
브라질산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이자 막달라
마리아이다. 책의 말미에 마리아는 육체적 욕망과 쾌락을 갈망하며 그 속에서 경건하게 찬양하는 행위가 영혼의 구원을 얻는 길임을 깨닫는다. 즉,
11분 동안의 행위 자체가 '절대 정열'이라는 것이다.
'11분'은 성에 관한 새로운 세계관도 제시한다. 그러나 당연 새롭지
않다. 가부장적인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지배한 세계에서도 교회에서 사용한 성화에는 항상 여자의 나체와 남자의 성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른바
이브가 아담 앞에서 전혀 부끄럼없이 당당한 것처럼. 각종 유물과 문헌보듯 섹스의 발현은 종교적인 행위로 묘사되곤 한다. 카마수트라나 소녀경이
경전으로 분류되는 성의 세계는 언제나 신의 세계와 동격이다. 이를 증명하듯 예수나 석가의 주변에는 '여자'가 항상 끊이지 않았다.
코엘류는 마리아를 통해서 성에 인간 스스로의 삶과 영혼의 구원을 각인시킨다. 동시에 작가는 쾌락의 탐하는 유혹과 생명을 주는
관계를 구분 지어 '파괴냐 구원이냐'를 묻는다. 그 속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최초의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이니 나는 경배받는
여자이자 멸시받는 여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아내이자 동정녀이니"..
결국 기독관에서 '구원받은 창녀 막달라 마리아'와
'동정녀인 성모 마리아'로 양분된 성행위에 '성스러운 창녀 마리아'의 탄생을 예고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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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질하는 '한국의 마리아' | 박계동의
몰카와 한국 마리아들의 셀카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희롱에서 보았듯 여성의원들과 여성 단체가 보여준 행동은 가히
남성에 대한 집단 폭력이었다. 여성의 현란한 최면에 걸린 언론들은 어떠했는가.
지난 몇개월 성폭력 기사가 여과없이 터져나와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불륜 행각을 끝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는 약해졌다. 3.24일 자 연합뉴스 '인면수심 성폭행범' 18행
기사에는 16번의 '성폭행 관련어'가 나오고, 3.25일자 오마이뉴스 '누리꾼의 2차 성폭행 도 넘었다' 67행 기사에는 45번, 3.28일
국민일보 '교사가 학생에..'21행 기사에는 20번의 관련어가 나온다.
이쯤되면 보도를 하는 것인지 언론에서 '그렇게 하자'는
선동적인 캠페인을 하는 것이지 모를 정도다. 그러면서 지극히 여성을 존중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남성에게는 가위를 들고 거세할 태도를 취해
보였다. 아마존의 여전사가 이 땅에 강림했으며 싫다는 여성까지 유리병에 넣고 보호해 주리라는 과대망상에 페미니즘을 접목하기에 이르렀다.
여권운동가들의 할 일은 무지하게 늘어나 신혼여행지에도 따라가 보초를 서 주어야 한다는 법안이 곧 발의될 것이다.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여성의원에게 '주물러 드릴까요?'라며 친절한 서비스 정신을 보인 모 의원은 시민단체에 의해 여지없이 낙선되었던 예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여성 단체에서 주장한 박계동의 몰카가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한다면 한국의 마리아들의 셀카는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눈부신
아이티 시대를 맞아 거시기와 머시기까지 탁본을 떠서 교환할 시기가 임박한 시대에 19세기식 조선녀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성운동이 조직화 된 여성 10%만의 목소리인지, 또한 우리는 '11분'에서 more인지 less인지도 함께 생각해 보고 덥벙 댈
일 아니겠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