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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칼럼>“불가능은 없다” 도전을 즐겨라

seoulpost서울포스트 2006. 7. 26. 10:15
<칼럼>“불가능은 없다” 도전을 즐겨라
캐나다 뇌성마비 소녀 지나 램버트, 두 팔로만 32시간 수영 온타리오 호수 건너다
나요셉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06/07/23 22:01)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8.7%가 일치한다. 그러나 1.3% 차이라고 해서 인간과 침팬지가 비슷하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침팬지에서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많지 않다. 1.3%의 차이가 가깝다는 논리가 아니라, 1.3%야말로 우주보다도 넓은 차이라는 말이다.

침팬지가 아무리 학습을 받아도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사는 부족, 이를테면 파푸아뉴기니 섬에 사는 원시부족은 문명사회에서 교육을 시키면 대학에 갈 수 있다. 이 말은 동물과 인간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의지의 유무에 있다. 동물에게는 인격의 속성인 지정의가 없다. 따라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못한다. 동물은 불가능한 상황이면 꼬리를 내린다. 본능으로만 산다. 그런데 인간은 지정의를 따라 산다. 그래서 인간은 불가능한 상황을 보면 ‘이성’과 ‘감정’이 “NO”라고 해도 ‘의지’가 힘이 세지면 ‘이성’과 ‘감정’을 설득하고 때론 강제적으로 끌고 가 결국에는 가능으로 바꾸는 추진력을 만든다. 그래서 인간인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소녀를 소개하고 싶다. 이름은 지나 램버트, 15세의 캐나다 소녀다. 그런데 지나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런 지나가 거대한 호수를 수영으로 건넜다. 지나 램버트는 다리가 불편한 뇌성마비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캐나다의 온타리오 호수를 수영으로 횡단하는데 성공해 감동을 주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에 사는 지나 램버트(15)양은 뉴욕 베어드포인트에서 출발해 두 손만으로 물을 저어 32시간 만에 호수를 횡단하는데 성공했다. 온타리오호는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있는 5대호 중의 하나로 면적 1만9,680㎢, 평균수심 91㎙의 거대한 호수다. 지나 양은 킹스턴 온타리오 공원 도착지점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굉장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0살 때 처음 퀸스대학 수영장을 찾은 지나 양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다리의 수술 자국을 부끄러워해 1년 동안은 물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나 이후 온타리오주에서 가장 촉망받는 수영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급성장했다. 장애 어린이와 그 형제자매로 구성된 킹스턴 YMCA 수영팀에서 활동하는 지나 양은 이번 도전으로 수영장 확장기금 5만 달러를 모금했다.

지나 양이 접영과 자유형으로 호수를 횡단하는 동안 부모와 여동생은 보트로 동행하며 격려했고, 카약 선수 2명이 물길을 인도했다. 당초 횡단에는 24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14노트의 강풍과 1.5㎙ 높이의 파도로 물길이 거세 8시간이 더 소요됐다.

지나 램버트양의 파이팅을 보면서 팔다리 성한 우리들은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 앞에 지금 크고 작은 장벽이 있다면 그것을 넘어야 한다. 아니 넘을 수 있다.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만든다면 가능하다. 인간은 무슨 일이든지 생각하는 만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만리장성. 달에서 보아도 그 흔적이 보인다는 그것. 만리장성은 거대한 방어벽이다. 상대국에서는 감히(?) 만리장성을 넘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그것을 뚫고 갈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성문지기를 내편으로 만들면 된다. 넘을 수는 없지만 들어갈 방법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불가능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묘한 말이지만 도전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 갖는 또 다른 기쁨은 불가능에 도전 했다는 기쁨이다. 도전 자체가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운 목표, 가야할 길, 뚫어야 할 문제의 벽이 있다면 도전해보자. 넘을 수 없다면 구멍을 내고 들어가 보자. 중요한 것은 “도전 자체”이기 때문이다.

▣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나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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